[인터뷰①] 걸음이 느린 아이, 배우 임찬민

임찬민 출연 뮤지컬 '로빈' 5월 1일 개막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작품 '해적'

김은정 기자 승인 2020.04.24 19:04 의견 0
 

고전 작품으로 꼭 한번 만나고 싶은 배우다. 오고 간 대화 속에는 그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깊은 속내와 뚜렷한 의견은 삶을 겪어내며 쌓아온 내공이다. 바이올린처럼 명랑한 소리를 낼 것 같지만 비올라의 온기를 닮은 배우 임찬민의 이야기.

배우 임찬민은 오는 5월 1일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로빈’에 출연한다. ‘로빈’은 아빠 로빈과 딸 루나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며 딸을 향한 아빠의 현실적인 고민과 애틋한 마음까지 솔직하게 담아내는 작품이다. 임찬민은 10년째 우주 벙커에서 살며 답답함을 느끼지만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낯선 아이 루나 역을 맡았다.

‘로빈’은 본래 지난 3월 10일 개막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개막을 2번 연기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갑작스러운 공연 연기에 그는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권고사항을 지켜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 아주 슬펐다. 개막 연기 공지 전날 풀 드레스 테크 리허설을 진행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아쉬움을 넘어 슬픔이 느껴졌다. 하루 정도 감정을 발산한 후 괜찮아졌다. 오히려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아쉬워해 주고, 내가 느낄 감정을 대신 느껴준 분들이 많아서 씩씩해질 수 있었다.”

돌연 생긴 휴식 기간, 임찬민에게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물었다.

“동선을 일정하게 해야 하는 시기잖나. 대학로에 작품을 보러오거나 동네 근처에서 지인을 만나는 정도로 움직임을 줄이고 있다.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는 권고를 보고 나란히 앉아서 얘기하는 중이다. 가끔 사진 찍을 때만 마주 보고 있다. 최대한 권고사항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해지면서 확진자 발생 수는 줄어들었다. 그 또한 최선의 노력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공연 연기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복잡한 감정을 남겼지만, 8월 2일까지 공연이 연장되면서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 있게 되었다.
 

ⓒ 쇼플레이

휴식기에 만난 임찬민에게 작품을 벗어나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가장 먼저 지난 2019년 3월 개막한 뮤지컬 ‘해적’에 관해 물었다. 그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낸 작품인 만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해적’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바다에 광활한 파도의 거침을 선물해준 작품이다. 본질적인 내용 자체가 인간애(愛)를 다루고 있다. 초연 후 앵콜 무대까지 할 수 있게 되어 핵심 메시지를 지속해서 생각할 수 있었고, 올해 계획에 큰 영향을 줬다.

작년에는 많은 작품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분명 그것을 원했었고 이루어졌다. 그런데 다작 하는 것이 배우로서 1순위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떤 하나를 만났을 때 진실하게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해적’이 주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출연작을 결정하면서 주어지는 기회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다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려 했다. 작품의 본질에 깊게 접근하고, 내 배역과 상대 역할에 대한 이해과정을 작품을 하며 거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해적’은 임찬민이라는 배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에 비례하는 부정적 말도 듣게 됐다. 아무리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시대라지만 급격한 주변 변화가 힘들지는 않았을까.

“어린 나이가 아닌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 부분이다. 그런 말도 있잖나. 내 주변에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7명은 나에게 관심 없고 2명은 나를 싫어하며 1명은 나를 좋아한다. 당연한 것 같다. 아마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걸 무서워했다면 배우라는 직업 자체를 선택하지 못했을 거다. 물론 나도 사람이다 보니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욕심인 것 같다. 나를 향한 타인의 감정까지 좌지우지할 수 없기에 그들이 느끼는 것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신도 인간의 감정을 관장할 수 없지 않나.(웃음) 인생사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로 인해 다양한 감정을 느껴주신다면 전체적 목적하의 배우로서 역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모니터링해주는 분들이 많아 여러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단지 알고 있을 뿐 나에게 큰 영향은 없다.”

‘해적’은 대학로 대표 젠더프리 작품 중 하나라고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유일한 여성 페어였던 임찬민과 랑연은 ‘찰랑페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당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몰이를 했다. 가장 중심에 서 있던 그는 젠더프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예전에 황정민 선배가 나온 연극 ‘라치드 3세’(2018)를 본 적 있다. '어떻게 저렇게 연기할까’ 감탄하면서도 ‘여성 배우도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젠더프리 개념이 없었다. 그저 ‘고전 주인공이 남자이기 때문에 남성 배우가 하겠지’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한 연출가가 해외에서 리차드 3세를 여성 배우가 연기한 이야기를 해줬다. 럭비 의상에 ‘3’이 새겨서 표현한 작품이었는데 말로만 들어도 고전을 위트있게 잘 풀어냈더라. 자신의 기질을 버리지 않으면서 리차드 3세를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먼 이야기, 혹은 꿈 같이 생각하던 것이 현실이 된 느낌이었다. 지금도 젠더프리는 현실과 꿈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젠더프리를 해 봤지만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나 또한 그저 꿈이 현실화 되어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것 같다. 다양한 시도와 함께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좋은 선례도 남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젠더프리 시도는 굉장히 긍정적이다. 더불어 관심 가져주시고 지켜봐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무대는 가장 열린 장소이자 투쟁적 공간이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공연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보다 여성 배우가 주목받게 되었고 그들의 역할에 대해 한 번 더 고찰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로에는 남자가 연출, 감독 등이 되어 앞장서 이끌고 다른 이들이 뒤따르는 경우가 파다하다. 데뷔 8년 차 배우로서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체감하는지 물었더니 다른 시각의 의견을 솔직하게 건넸다. 공연은 누군가 정점에 있는 피라미드형이 아닌 평등한 구조라는 것.

“대학로에 발을 디딘 지 만 3년 정도 됐다. 워낙 이곳에 오래 계신 분들이 많아서 신인 같은 느낌이다.(웃음) 요즘 쉬면서 성실하게 관극하고 있는데 객석에 앉아 있으면서 관객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들도 많다. 밖에서 보면 분명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나는 배우는 물론 연출가도 순위가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연출가나 감독처럼 가장 높은 자리에 남자가 있다’는 것도 어쩌면 프레임의 피해자일 수 있다. 극은 공동 창작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굉장히 수평 구조로 되어있다. 각자의 색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어우러져 만드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으며 서로 이해하려는 작업 환경도 조성되어 가고 있다. 나이와 관계없이 베테랑 창작자분들도 젊은 창작자나 배우들과 소통하며 손을 잡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관객이 느낄 만큼 성별을 떠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동 창작해가는 환경도 많아지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참 단단하고 심지가 곧은 사람. 임찬민과 이야기를 나누며 든 생각이다. 그가 내다보는 자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물었더니 “내가 앞날을 볼 수 있었다면 벌써 자리를 깔았을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서른 살 넘어서는 매해 심장 한편이 찢어질 만큼 아픈 일이 매년 일어났다. 지금도 그런 과정 중에 있는 것 같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며 절망하고 자책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줄었다. 그저 슬픔과 고통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바닥을 치면 다음으로 나아가는 패턴이 매년 이어졌다. 글쎄, 앞을 내다봐도 나의 길은 모르겠다.(웃음) 하지만 지난 길에서 배워온 것들이 있다. 그걸 토대로 현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 미래는 내가 꿈꾸고 바라고 기도한들 들어주지 않으시더라. 그저 지금을 살고 과거로부터 배우는 삶, 딱 그만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무엇이 그렇게 아픔이 되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정통으로 싸워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통과 아픈 일은 아무리 바래도 빗겨나가지 않더라. 결국 정면으로 마주해서 이기면 이기는 거고, 지거나 비기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사람이나 상황 모두 그렇다. 서른 살 전에는 드라마적, 서사적 작품을 많이 못 했다. 기회도 오지 않았고 안정적 수익을 택하기 위해 제안해주는 작품을 주로 했다. 그때는 그게 자연스러웠다. 공부하려면 기간을 길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돈을 따로 벌면서 배우 활동을 하려다 보니 선택의 폭도 좁았다. 서른 넘어갈 즘 깊은 고민과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29살에서 30살이 될 때쯤 연기적 고민을 많이 했다. (서른 살을 맞이하면서는 어땠나?) 특별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똑같이 불안하고 어려웠다. 주변에서 아홉수니 삼재니 이런 단어가 들릴 때면 ‘아, 내가 그래서!’라는 생각도 했다.(웃음) 내가 아무리 달려도 남들보다 늦었기 때문에 ‘그냥 내 속도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출발이 늦었는데 어떻게 하겠나. 뛰면 가다가 넘어질 텐데… 그저 멈추지 않고 나아가려는 시도는 계속했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저작권자 ⓒ 이뉴스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