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임찬민 "'로빈' 현재 상황과 많이 닮은 작품"

관객은 사랑하는 사람, 실망시키지 않겠다
'로빈' 현재 우리 상황과 닮아있어

김은정 기자 승인 2020.04.24 19:05 의견 0
 

(인터뷰①에 이어)

공연 보는 것을 '가장 좋은 교과서'라고 표현한 임찬민은 인터뷰를 마치고 동료 공연을 보러 발걸음을 서둘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하는 그의 짧은 관람 후기는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면서도 핵심을 찔러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막연하게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던 임찬민은 마침내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무대와 연기의 어떤 매력이 그를 결심하게 했을까.

“내 마음속 넘버 원 연기자는 손숙 선생님이다. 해마다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건 선생님의 눈빛이다. 관객에게 신뢰감을 주는 눈. ‘아, 저 정도가 아니면 배우를 꿈꿀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연기자는 선택받은 자만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10~20대에는 그런 부분에서 싸웠다.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강하게 느낀 결정적 계기는 19살 때 절친한 친구와 함께 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공연이다. 자리도 3층이었고 대사도 한 마디 못 알아듣겠는데 그 기운이 전율로 다가왔다. 온몸이 곤두서는 느낌이랄까. ‘아잇! 진짜 하고 싶네’ 생각하게 되었고 결정하는데 딱 3년이 걸렸다. 어릴 적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과 인식이 달랐다. 부모님도 걱정하시며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누가 싫어하거나 안 좋게 생각하면 굳이 강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또 부모님을 설득할 만큼 현재의 것을 잘해두지 않으면 ‘하고 싶다’고 우기는 것밖에 안 되잖나. ‘느리게 가더라도 내 것이 되려면 되겠지’ 생각하며 지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느렸다. 성격은 급한데 판단과 실행은 천천히 간다. 그래서 공연을 보고 배우 하겠다고 결정하기까지 3년이 걸린 거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그는 중국어 전공을 살려 일반 회사에 입사했다. 당시 마음속에서 느낀 가장 큰 갈등은 무엇이었을까.

“돈을 벌어 레슨비를 충당하던 시기였는데, 일을 하다 보니 학원을 못 가는 날이 많아졌다. 선택과 집중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가?' 깊이 생각했다. 못해도 반년 이상은 다녀야 할 것 같아서 회사에 8개월 정도 다녔다. 그런데 월급 주는 분들은 사람을 그만큼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시잖나. 쉽게 거친 언행도 사용하고. 그게 하는 사람은 별생각 없을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매우 아프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가 저런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상명하복 구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결론을 내리고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왔다.

내가 사회생활을 한 것은 특별하지 않다. 예전에 극단 작업 할 때는 통역사, 학습지 교사 등을 하신 분도 계셨다. 20대 중반에 여러 사람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됐다. 지난 일들은 그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뿐이다. 어릴 때부터 연기만 바라본 배우들을 포함해 모든 배우의 배경은 다 다르다. 그저 나와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잘 맞을 수도 있고, 배울 점이 있을 수도 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때로는 힘들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다.”

느린 발걸음으로 신중하게 꿈을 향해 걷던 임찬민은 25살에 뮤지컬 관련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동안 연기와 노래는 어떻게 습득하고 공부했는지 물었다.

“일반 학교 과정을 거친 친구들에 비하면 내가 받은 레슨은 시간상으로 부족하다. 돈을 벌 때는 계속 작품을 보러 다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공연을 보는 것만큼 좋은 공부는 없는 것 같다. 노래 잘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치 홈스쿨링처럼 온갖 자료를 찾아서 보고 듣고 연습했다. 29살까지는 시기마다 필요한 보컬 선생님을 찾아서 레슨을 받았다. 그때는 돈을 벌면 다 교육비로 투자했다.

내 이미지상 가족 뮤지컬 제안을 많이 받았다. 배우로 활동하기에 그 생활이 더 안정적이기는 하다.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연출가와 함께하면 더 그랬다. 물론 그 분야도 재미있었지만 다른 세계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그때 전문성 있는 교육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지금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때는 진짜 죽어라고 했다. 2시간밖에 잠을 못 자면서도 제작 실습, 보컬, 안무, 연기 공부를 했다.”
 

 

지금까지 참여했던 공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첫 공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뮤지컬 ‘해적’이다. 이 작품이 부상 회복 후 처음 선보이는 신작이었다. (임찬민은 지난 2018년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연습 중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해적’으로 내 몸 상태가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첫 공연으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다. 내 개인의 목적으로 무대에 서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많이 힘들었고 반성했기에 가장 잊을 수 없고 고마운 공연이다. 굉장히 무서웠다. 온전히 이 작품에 대해 생각했다면 무섭지 않았을 텐데, 개인의 욕심이 정서적 무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걸 두고두고 기억나게 했다.

무대에 설 때 많이 긴장하는 편인지 물었더니 “당연히 긴장한다”고 답했다.

“무대 들어가기 전에 계속 호흡을 고른다. 그런 나를 보며 '계속 떠는구나!' 생각한다. 작년에 오른 무대는 심장을 죄어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해적’ 할 때는 검정 촛불을 들고 으쌰으쌰 하면서 몸을 풀고 나갔었다. (그 긴장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객석에 계신 관객분들은 매번 다르잖나. 같은 무대가 될 수 없다. 또 팬분들이 보러 와주실 때도 있는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더 떨리는 것과 같다. 내가 준비한 모든 걸 다 꺼내서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봐주시는 거잖나. 그 감정은 뭐라고 정의할 수 없다. 무대 위에서의 떨림은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를 정말 잘 전달해드리고 싶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을 관객들이 잘 보고 가주시면 좋겠다. 서로를 위해서다. 가끔 그런 순간이 손 떨림처럼 근육을 통해 표현될 수도 있지만, 그걸 가리기 위해 신체를 컨트롤하는 순간 제3의 감정이 개입된다.

사실 어떤 배우가 관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 나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주는 분들이잖나. 어떻게 보면 맹목적인 사랑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관객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쉬운 순간들이 더 세밀하게 기억되는 것 같기도 하다.”

임찬민이 느끼는 관객의 사랑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임찬민이라는 사람에게 관객의 사랑은 항상 넘치는 것 같다. 매번 과분하다고 느낀다. 나는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라서 그 거대한 사랑을 담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바쁘게 활동하기도 했고, 내 성별로 강렬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는 영광도 누렸다. 그 모든 것이 ‘온전하게 내 것이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관객은 거울 같은 존재다. 자양분이 되어주면서도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관객의 사랑에는 그분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있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기에 더 감사하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 전하고 싶은 힘이 되는 메시지.

“괜찮지 않다면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이기에 답답하고 슬플 수 있다. ‘힘내라 괜찮다’는 말은 여기저기서 읽고 들을 수 있지만, 나는 이런 말을 해드리고 싶다.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내 감정부터 잘 돌봐야 한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까보다 지금 나 자신이 올바르게 설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이 시간이 흐른 뒤 그때는 그랬지 하며 웃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지금 힘든 것에 대해 이유나 상황을 찾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집중하는 시간을 꼭 만들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내가 겪고 있는 일,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 쇼플레이

5월 1일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로빈’에 대해 한 마디.

“아마 첫 공연을 올리고 눈물 흘리는 첫 작품이 될 것 같다.(웃음) ‘로빈’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현재 상황과 많이 닮은 극이라고 생각한다. 이 인터뷰를 읽고 작품을 보시면 더 많이 느끼실 것 같다. 집에서 혼자 외로울 때면 ‘로빈’ 넘버를 부르곤 한다. 그러면서 루나의 마음에 더 다가간다. 지금은 힘들고 슬픈 상황이다. 이 말을 하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모든 순간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그림자가 우리 눈앞에 와있지만 어둠 속에서 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루나의 존재가 빛이 되어준다. 관객분들이 함께 루나의 빛을 목격해주신다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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