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최후진술’ 현석준, 성장통 느낀 그 어느 봄날

김은정 기자 승인 2020.04.14 13:21 | 최종 수정 2020.04.14 15:54 의견 0
 

누구나 한 번쯤 성장통을 겪는다. 아프고 찌릿하지만, 그 고비만 잘 넘기면 어느새 불쑥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 환한 빛을 발산하던 그는 데뷔 3년 차에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지점에 도달했다. 인내는 쓸지라도 끝에 얻게 될 열매는 가장 달콤하리라. 묵묵한 노력으로 성장통을 견뎌낸 배우 현석준의 이야기.

배우 현석준은 지난 3월 13일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최후진술'에 출연 중이다. 이 작품은 지동설로 널리 알려진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세기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 역사 속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한 독특한 세계를 선사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외 다양한 인물을 소화하며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그에게 약 한 달간 '최후진술' 무대에 선 소감을 물었다.

“단언할 수 있다. 내가 경험이 많은 배우는 아니지만 '최후진술'은 어렵고 해야 하는 게 많은 극이다. 공연 올린 후 개별적으로 연습실에 계속 나가고 대본에서 손을 못 뗀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본적인 대사와 가사 숙지부터 춤, 노래까지 할 일이 정말 많다. 잘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뮤지컬 '해적'에 이어 다시 한번 2인극에 도전한 현석준은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게 되면서 배우로서 '보는 공연'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멀티 배역을 하면서 공연을 더 많이 봐야겠다고 느꼈다. 각 인물을 나타내려면 내가 가진 자원이 필요한데, 지금은 부족하다. 나 스스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연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을 많이 접할수록 모티브로 삼을 수 있는 요소가 풍부해질 거라고 생각하기에 이제부터 더 많이 보려고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책망했지만, 무대 위 그의 모습은 다채롭다. 여러 인물을 표현하며 가장 중점 둔 부분과 차별점은 무엇일까.

“서사 전달에 가장 중점을 뒀다. 이야기가 잘 전달될 수 있게 캐릭터를 구축했고, 무엇보다 다른 인물임이 명확하게 보이도록 중간 지점의 것들을 하지 않았다. 어디에서나 볼법한 인물이라도 하나의 특징을 극대화하여 강조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나에게 편한 인물이어서 '나'로부터 출발했다. 누구한테 싫은 말,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하는 모습 등과 함께 따뜻한 인물로 보일 수 있게 했다.

존 밀턴은 보는 분들이 귀여워해 주신다.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데, 나는 귀여운 사람이 아닌데 귀엽다는 말을 들으니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구나' 생각하고 있다.(웃음) 밀턴의 경우 연출님이 '누군가의 팬'이라고 생각해보라 하셨다. 그때 트와이스를 예로 들어주셨는데, 이미 내 마음속 넘버원이 있었다. (누군가?) … 어릴 때 신민아 님을 좋아했다. 그 마음을 떠올려서 접근했다. 3년 전 tvN 드라마 ‘내일 그대와’(2017)를 볼 때만 해도 살랑이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삶에 치여서 그럴 여유가 없더라. 그래서 과거의 감각을 떠올려야 했다. 

프레디는 절대자라고 생각했다. 작품 속 인물 중 가장 센 사람이다. 근엄함을 바탕으로 중성적 요소를 특징으로 잡았다. 캐릭터 안에서 서사가 드러나고 연결될 수 있게 구축했다. 해석의 여지가 열려있는 작품이라 윌리엄의 연장선으로 볼 것인지, 다른 시각으로 볼지 많이 고민했다. 이에 대한 결론은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말하지 않겠다. 갈릴레오에게 단 한마디의 말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는 점만 밝히겠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거친 사람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가 터프한 사람으로 가닥을 잡아서 목소리를 낮게 깔고 거들먹거렸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는 말하기 좋아하는 학원 강사를 모티브로 삼아 인터넷 강의를 엄청 찾아봤다. 비행사는 약 올리기 장인으로 생각했다. 강도는 쫄보다. 강도질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 손가락 총처럼 모순된 지점을 설정했다.”

1인 다(多)역을 소화하면서 시선을 사로잡은 건 자유자재로 해내는 목소리 변형이다.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바꾸는 것 같다고 말하자 "감사합니다"라고 즉답했다.

“목소리는 학생 때부터 자부할 수 있다. 그 누구보다 호흡과 발성 수업을 열심히 듣고 훈련했다. 훈련 후 목소리가 많이 변했다. 원래 중저음 목소리가 갖고 싶어서 일부러 눌러서 소리 내곤 했다. 그런데 호흡과 발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 듣기 좋은 소리, 내가 편안하게 내는 소리다. 충실하게 훈련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호흡을 단전으로 내리게 됐고, 편한 목소리를 내게 됐다. 그렇게 찾은 본래 목소리가 중저음이었다. 원했던 목소리를 갖게 된 거다. (짝짝짝) 목소리 변형에 대해서는 거부감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더 다양하게 바꾸지 못하는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최후진술'은 과학, 수학, 문학, 예술 등을 광범위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아는 만큼 즐거움이 커지는 이 공연을 관객 입장에서 어떻게 봐야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 극의 매력은 '어떤 배역이 갈릴레오를 어떻게 변화시켜가는가'다. 2인극인 만큼 그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현석준이 연기하는 윌리엄이 어떻게 갈릴레오를 변화시키고자 하는지 관객분들이 잘 봐주시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윌리엄은 대놓고 갈릴레오를 변하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씩 흘러가듯 변화시키려 한다. 만약 그가 갈릴레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면 이미 진작에 헤어졌을 사이다. 하지만 마지막에서야 화를 내면서 ‘내 주인공, 너는 진실을 직시해라’라고 한다. 윌리엄이 어떻게 갈릴레오를 구워삶아 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지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Love is love is love is love is - ‘Freddie’
'최후진술' 넘버 가사 중 ‘Love is’라는 가사가 있다. 현석준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는 거다. 나는 나를 온전하게 인정해줄 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나 또한 상대방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자기 기준에서 보게 되니까 쉽지 않은 것 같다.”

음악이 흐르면 난 그냥 춤을 춰, 관객이 없어도 다리가 아파도 - ‘I am a dancer’
최근 관객 사이에서는 그의 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현석준에게 ‘춤’이란 무엇인지 물었더니 “춤은 너무 재미있다(쓴웃음)”고 답했다.

“솔직히 춤을 못 춰서 미치겠는데, 정말 재미있다. 춤을 추려면 기본적으로 익혀야 하는 스트레칭 등이 있는데 이걸 학생 때 안 배우고 도망 다녔다. 19살부터 연기 수업을 받았는데, 춤 수업은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춤을 안 춰서 그렇지, 못 추는 건 아닐 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내가 춤을 너무 못 추고 춤 선도 안 나오더라. 하하하. 주변에서 내가 춤만 추면 웃었다.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최)민우가 춤을 굉장히 잘 춘다. 나는 배운 거 소화하기 바쁜데 민우는 그 자리에서 재생산한다. 너무 부러웠다.

지금은 춤 레슨을 받고 있다. 처음 선생님한테 가서 '내가 단기간에 못 할 거라는 건 알지만, 꾸준히 할 테니 사람답게 춤추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몸은 뻣뻣한데 독기는 있어서 '막 눌러 달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죄송한데 이제 늘어날 나이가 아니라 부러질 나이’라고 하셔서 천천히 하고 있다. (댄서 현석준을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선생님 말로는 1~2년 후면 된다고 했다.  2년 후에도 나는 30대 초반이다. 아직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춤을 재미있어하니까 금방 늘지 않을까? 자신감은 (노)희찬이 형에게 티칭 받았다. 춤 선생님이 희찬이 형 춤을 보고 코멘트도 안 해줬는데 ‘넌 그냥 이렇게 해야 한다. 귀엽다’고 했다. 나는 잘 추고 싶은데 안되니까 표정이 어두워졌다. 희찬이 형이 ‘그냥 나처럼 해, 어차피 우린 단기간에 좋아질 수 없다’면서 자신감을 주었고 표정도 알려줬다.”

사인해주세요! 사인? 나 한 번도 안 해봤는데? - 갈릴레오와 프레디의 대화
프레디는 갈릴레오에게 사인해준다. 현석준의 첫 사인의 기억이 궁금했다.

“고등학교 내내 같은 반 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연기할 거라고 말하니까 ‘그럼 나 사인해줘, 나중에 유명해질지도 모르니까’라고 했다. 부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잖나. 교과서 가장 앞 페이지에 내 첫 사인을 했다. 지금까지도 그 사인을 유지하고 있다. 중간에 바꿔볼까도 생각했지만 바꾸지 않았다. (어떻게 바꾸고 싶었나?) 그냥 이름 석자로 바꾸고 싶었지만 당분간은 지금과 같을 거다. 그때 사인을 하면서 나 스스로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걸 확실히 기억한다.”

이거 자유이용권으로 딱 한 번! 쓸 수 있어 - 프레디
절대카드인 프레디의 사인, 자유이용권이 있다면 그는 언제로 돌아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이 함께 뉴질랜드 한달살이를 했었다. 벌써 20년 전인데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누군가 '너는 어느 나라가 좋아?'라고 질문하면 뉴질랜드라고 망설임 없이 답할 정도다. 현재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 보고 싶다. 그때는 어려서 다양하게 느끼지 못했었던 것 같다. 마냥 걱정 없이 뛰어놀았던 그 시절로 가보고 싶다.”
 

 

최후진술하라 - 재판관
죽기 직전 최후진술 해야 한다면 현석준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나는 갈릴레오처럼 거짓말을 못 할 것 같다. 애초에 그런 상황까지 가지도 않을 거다. 본질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거짓말 할 때가 있는데 겁이 많은 성격이라 '거짓말 걸리면 어쩌지?' 걱정하게 되고 마음이 불편하다. 어릴 때는 부모님,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했었다. 이제는 안 하지만, 오히려 거짓말을 안 해서 '선의의 거짓말도 있는 거'라고 주변 사람에게 핀잔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런데 정말 못하겠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더 이해해 주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든다. 아직 순수한 걸까?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혼난 적도 있지만 거짓말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마음이 불편하다.

가장 최근에 한 거짓말은, 엄마가 인터뷰를 보실지 모르겠지만(웃음) 오디션 보고 난 후 부모님께 하는 말이다. 나는 부모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 무슨 오디션을 보는지 다 말한다. 오디션 직후에는 결과를 알 수 없지만, 엄마가 '잘 봤느냐?'고 물어보면 항상 잘봤다고 답한다. 어쨌든 결과는 모르는 거잖나. 괜한 걱정 하실까 봐 '심시위원들이 되게 열심히 봐주시던데요?' 같은 말도 곁들여가며 잘봤다고 한다. (갑작스럽지만 오디션 준비는 어떻게 하나?) 오디션 준비는 무한 반복이다. 체력만큼은 좋아서 연습실에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반복한다. 나는 오디션을 볼 때 확실한 마음이 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는 건데 '나를 안 뽑으면 더 좋은 사람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자신감으로 임한다. 물론 나보다 잘하는 사람,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마음으로 오디션 장소에 들어간다.”

제발 책 쓰지 마세요, 제멋에 겨워서 함부로 책 쓰면 무식의 증거가 영원히 남아요 - ‘프톨레마이오스’
작가가 세상에 글을 남긴다면 배우는 연기로 남는다. 기록적 의미에서 배우는 성장사를 고스란히 관객과 공유하게 되는데, 현석준은 자신의 연기가 어떤 기억으로 남길 바랄까.

“나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나다운 것을 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 정말 어려운 일이면서 평생 숙제인 것 같다. 연극 ‘오펀스’와 뮤지컬 ‘아티스’를 함께했던 (김)도빈 형을 보면서 많이 공부한다. '일할 때 내가 즐거워야 상대방, 그리고 모두가 즐거워진다. 그래야 나답게 할 수 있다. 설사 공연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좋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은 헛되지 않은 것'이라고 도빈이 형이 강조했었다.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예전에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게 먼저였는데, 이제는 '나답게 나만이 할 수 있는걸' 우선 찾게 됐다.

내 연기가 남는다는 건 솔직히 뿌듯하다. 지난해 출연했던 '오펀스'의 경우도 3년 전 초연을 봤을 때, 나는 (김)바다 형의 무대를 보고 숨도 못 쉬면서 공연장 밖으로 나왔다. 그 정도로 좋았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가 찾아와 주었다. 이건 정말 큰 기억이다. 불과 작년 초만 해도 나는 ‘대학로에서 공연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던 사람이다. 지금 이렇게 쉬지 않고 꾸준히 공연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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